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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803호 할아버지의 슬픈 이야기)

by 남주자 2021.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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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803호 할아버지의 슬픈 이야기) 

요즘 코로나로 인해서 울적한 기분이 많이 들죠?

울적할 때는 슬픈 이야기나 감동적인 이야기로 감성을 잡아주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있었던 저의 이야기를 하나 해주려고 합니다.

 

내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오피스텔 경비를 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안내테스크원 역할을 수행 중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는 일상이었는데
오후 20시정도 되었을 때 갑자기 한 입주민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짐작할 수 있었다. 경비를 하다보면 많은 입주민이 민원을 넣는데 대부분이 화가난 상태에서 나를 향해 다가온다. 그들을 화나게 한 사람은 내가 아니지만..
그들은 나에게 와서 불만을 털어낸다. 이것도 내가 맡은 일의 한부분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민원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이번 민원은 이랬다.

입주민: 아니!! 또! 803호 할아버지 복도에 음식물 내놔서 복도에 온통 쓰레기 냄새로 가득해요!! 지금 몇 번째 민원 넣었는데 문제가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고 당신네들 돈 받는 거 전부 우리 관리비로 주는 건데! 이런 일 하나 처리 못하고 뭐하는 거에요!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이번 민원은 처음듣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아마도 다른 근무자들이 안내데스크원을 수행하고 있을 때 들어온 문제같았다. 어째서 이런 문제를 인수인계 안 하고 그냥 퇴근한 건지.. 라는 불만이 싹트지만 일단 입주민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여기서 나는 죄송하다고 말해야 한다. 안 그러면 입주민에 화는 가라앉지 않고 끝도없이 나를 향해 가시를 던질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이 깨달음은 경비 일을 하면서 배운 나의 경험으로 알 수 있던 것이다.

계속 불편드려서 ㅈ.. 죄송합니다. 저희 쪽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문제가 빠른 시일내에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말한 뒤 연방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고개를 숙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 고개를 안 숙이고 말로만 전하는 것과 고개를 숙이며 말을 전하는 것에는 엄청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았다.
고개를 숙이고 말을하면 10분정도는 잔소리가 줄어든다. 이런 내가 부끄럽지 않냐고? 자존심도 없냐고?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내가 감정이 없는 바보로 보이는가? 절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나는 상처를 잘받고 잘 잊지도 못하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지금 당장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시같은 말이 끝나고 나면 힐끔 입주민을 쳐다본다. 표정을 보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이제 표정만 봐도 그 사람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입주민의 표정은 (왜인지 내가 몹쓸 사람이 된 거 같은.. 나쁜 사람이 된 거 같다는) 아리송한 표정을 짖더니
이런 말을 했다.

입주민: 저기.. 경비아저씨 내가 경비아저씨한테 화난 거 아닌거는 알죠? 나도 답답해서 그래요. 진짜 맨날 복도에 음식물 냄새가 나면 정말 스트레스 받고 이번에도 참다가 참다가 내려와서 아저씨한테 내가 좀 많이 화를 낸 거 같아; 오해하지는 말아요.

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렇게 나는 경비실에 있는 지점장에게 들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저..지점장님 이번에 민원이 들어왔는데요 803호 할아버지가 또 밖에 음식물을 내놓았다고 하네요..?


그러자 지점장은

지점장: 아~ 그 문제.. 우리도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들어주시지를 않는데 어떡하냐;; 머 나라고 처리해보려 안 해봤겠냐.. 다 해결이 안되니깐 그렇지.

저..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해결 안되면 계속 민원은 들어올텐데.. 그럴때마다 죄송하다고 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거 같은데요.. 저 그 입주민 얼굴 못보겠어요..


지점장: 하... 일단 가서 말은 한 번 더 해볼게. 근데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진짜.. 내가 멀 어떻게 할 수 있겠냐.. 자기 집 앞에 음식물을 내두겠다는데..

그렇게 대화는 끝났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지점장님은 절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다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사람도 나라는 것을.

나는 그때부터 803호 할아버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계속 나도 모르게 눈이 가면서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몇 가지 사실을 알게되었는데.

첫 째는 할아버지는 독거노인이라는 것과 항상 혼자 식사를 하신다는 것이다.
둘 째는 할아버지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803호 할아버지를 보면서 고향에 계시는 친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엄청.. 고독하고 외로우실 거 같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803호 할아버지가 데스크를 지나갈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안녕하세요! 식사하러 가세요?


803호 할아버지: ..??

한 이주 동안 인사를 드렸는데 한 번도 안 받아주셨다.
내가 인사를 건냈을 때 803호 할아버지 표정은 이런 말을 하는 거 같았다.
"이 세기 뭐지?"

그래도 나는 계속 인사를 드렸다. 어떻게 안 받아주는 인사를 계속해서 건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습관이 되버려서 자동적으로 나올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803호 할아버지는 인사를 받아주셨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먼저 농담을 하시고 또 새벽에 내려오셔서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걸으셨다.

803호 할아버지: 너는 몇 살이니?

안녕하세요! 아.. 저는 19살이에요 학교를 남들보다 1년 일찍들어가서 학교를 19살에 졸업을 했어요!



803호 할아버지: 이야~ 진짜 젊다! 나는 최소 스물 다섯은 되어보인다고 생각했는데..말이야

앜ㅋ 감사합니다. 성숙해보이니 다행이네요 힣!

그 날 이후로 803호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에 내려오셔서 나랑 대화를 나누셨다.
803호 할아버지는 나에게 궁금한게 많으셨나보다.
꿈은 뭐냐? 밥은 잘 먹냐? 일은 힘들지 않냐? 고향은 어디냐? 운동은 하냐? 너는 항상 밝아서 좋다. 너는 정말 일을 열심히해. 등등 많은 질문과 칭찬을 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자동적으로 음식물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나는 그런데 한 번도 803호 할아버지께 음식물에 관해 이야기 한적이 없었다.

1년6개월 경비 일을 했을 때 즈음에 나는 다른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803호 할아버지와 마지막 대화를 안내데스크에서 나누었다.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음식물에 관하여 물어보고 싶어서 조심스레 803호 할아버지께 물어봤다.

저.. 할아버지? 그런데 이제 밖에 음식물통 안 두시네요? 왜 인가요?


그러자 803호 할아버지는

803호 할아버지: 내 손주 뻘 되는 너한테 창피해서 도저히 밖에 못두겠더라!

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사실 많이 고독하고 외로우셨던 것 뿐이었다. 대화 상대도 없고 식사도 혼자 하시고 아무도 그 쉬운 다정한 인사 한 마디도 안 건내주는 삶이 많이 아프셨던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타인에게 미움을 받아서라도 관심을 끌고 싶은 어린 아이와 같은 행동을 하셨던 것이었다. 어린 아이는 부모가 관심을 주지 않으면 혼나는 일이 있더라도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부모가 싫어하는 행동을 한다고 한다.

음식물통을 밖에 내두면 그래도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말을 걸어주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한 가지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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