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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및 좋은글귀

짧고 좋은 글귀(비판과 비난을 대하는 자세)

by 남주자 2023.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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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난과 비판을 대하는 자세에 관한 명언과 짧고 좋은 글귀들을 준비했습니다.

글쓴이의 표현력이 부족해 설명이 부족한 점 양해 바랍니다.

짧고 좋은 글귀를 읽다 보면 매우 유익한 점이 많습니다. 위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를 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매우 귀중한 금언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짧고 좋은 글귀 시작하겠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sns 댓글 창이 새로운 대화수단이 되었습니다.

요즘 댓글 창에 내용들을 보면 타인을 깎아내리는 비난적인 내용이 정말 많습니다.

사실 그들에게는 '비난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비난할 사람'이 필요한 것일 뿐이죠.

세상에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합니다.

한 가지는 함께 '더 높은 차원으로 가기 위한 평등'이 있는 반면에 다른 하나는 '남을 깎아 내려서 자기 수준까지 끌어내리는 평등'이 있다고 합니다.

비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비난을 피하려 노력하는 행위는 사실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학교를 다닐 때 배울 수 있는 교훈입니다.

아무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무리와 어울리지 않으며 혼자 조용히 보내는 학생은 주변 친구들에게서 비난을 피할 수 있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그들은 그 조용한 학생을 뒤에서 험담하거나 놀립니다. 마네킹처럼 딱딱하고 이상한 사람이라 비난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대부분의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대인관계가 좋은 학생은 비난을 피할 수 있을까요?

이것 또한 아닙니다.

그를 부러워하는 다른 사람의 비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결국 비난을 피하려 노력하는 행위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비난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시간 낭비고 부질없는 일이죠. 그저 최고의 방법은  할 일 하면서 비난이라는 비가 사그라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일이라 합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은 나라를 가진 사람보다 가치 있다고 합니다.

유럽 대부분을 지배했던 나폴레옹 조차 인생에 행복했던 시간은 단 일주일조차도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나폴레옹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가 아니라 마음을 지배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악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자기 자신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도 남들과 다를 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게 됩니다.

누구나 인생의 우선순위는 자기 자신인 건 마찬가지니까요.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일은 우리는 타인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sns의 수많은 글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각종 의견이나 비난글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행동에는 타인에 관심을 끌기 위한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해당하는 일이지 관심이 있어서 하는 행동은 아니라고 합니다.

'관심을 받고 싶은 것'과 '관심이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른 부분입니다.

모든 이가 댓글을 쓸 때 사실 여부를 따져가며 글을 쓰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난하는 말들에 상처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깊이가 없는 싸구려 가치 없는 말이니까요.

벤자민 프랭클린의 13가지 반성 중 3가지는


1. 시간을 허비했다.

2. 사소한 것이 신경을 썼다.

3.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따지고 들고 반박했다
.

모든 이가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너무 효율을 따져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너무 피곤하고 재미없을 거 같습니다. 사람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시간을 최고 효율적으로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효율적인 계획을 세울 수는 있어도 그것을 오랫동안 유지하기는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율적인 방법보다는 좀 더 비효율적이더라도 '자기 자신에게 맞는 계획과 방법'을 세워서 착실히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인생은 마라톤'이고 '효율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입니다.

타인으로부터 배울 것이 더 많다.

필자는 타인을 비난하고 험담하거나 뒤에서 남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나도 이렇게 나에 대해 말하고 다니겠구나.' 이것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뒤에서 남이야기를 하지 않게 됐습니다.

또 힘들 때는 어설픈 위로보다는 조용히 같이 있어주는 게 더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아무리 상대가 잘 못을 했어도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면 오히려 화를 내는 사람의 인성이 더 안 좋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각을 해보니 큰 교훈을 얻은 일들은 전부 '타인의 잘 못된 행동'을 통해 배운 거 같습니다.

타인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인 거 같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선생님'입니다.

도덕적이고 지혜로운 당신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미워하지 마시고 고마워합시다.

라로슈퓨코는 어떤 의미로 이런 명언을 남겼을까요.

비판을 피하지 말고 귀 기울여 들으라는 메시지일까요?

하지만, 듣기 싫은 말을 귀담아듣는 것만큼 힘들일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링컨이 정말 대단한 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어리석고 멍청한 인간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에게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아마 그 말은 틀림없을 거다.'라 말해주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소름이 돋는 문장입니다. 정말 '존중의 표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을 비난하고 모욕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요?

그렇기에 노예 해방을 시키는 위대한 일을 달성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대의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도모하지 않는다.

정말 자신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타인을 꾸짖거나 타인을 비난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목표 이외에 아무것도 보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비난에 기분 나빠할 시간도 없고 누군가를 비난할 시간도 없습니다.

니체는 '살아야 할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라 말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인 프랭클 박사의 사례에 딱 맞는 명언인 거 같습니다.

프랭클 박사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그 잔혹하고 언제 죽임 당할지 모르는 그 순간을 버틸 수 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링컨은 비방을 이겨낸 사람이군요.
비방을 똑같이 비방으로 하는 사람은 그와 다를 게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비방을 먼저 한쪽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겠네요.

뇌는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언제든지 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도 스스로가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잘 수 있다.'라 생각을 하고 행동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뇌에서 착각을 해서 정말로 그런 사람처럼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뇌는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은 생각을 따라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행동을 하다 보면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즐겁지 않은데 즐거운 것처럼 행동하면 생각도 즐거워지는 것과 같은 이론입니다.

'새는 즐겁기 때문에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하니깐 즐거운 거다.'라는 명언이 생각납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로 육체적인 운동을 할 때보다 정신적인 대미지를 입었을 때 더 피로해지는 거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을 컨트롤'하고 '다듬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자신을 존중하라.

옛날에 심리에 대한 강의를 들었을 때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이큐 높은 사람보다 감성지능 높은 사람'이 더 사회생활을 잘하고 행복 지수가 높았다는 연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타인을 공감한다는 일은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면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하였습니다.
(정확하게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닌 아테네 신전 기둥에 써져 있던 말이었는데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읽고 인용한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데 타인을 알기란 불가능한 일인 거 같습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필자는 자기 자신을 전부 알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타인의 잘못된 행동이나 불쾌한 행동을 보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우리는 타인의 교류 없이 스스로를 알 수는 없는 거 같습니다. 우리를 비춰줄 거울이 없다면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인은 우리의 '거울'입니다.
'생각도 다 다르고 행동도 다 다른데 어떻게 거울이냐'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비난받으면 기분 나쁜 것은 모두 똑같습니다.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것도 모두 똑같습니다.

'내가 싫은 행동'은 '타인도 똑같이 받기 싫은 행동'이라는 것도 똑같죠.

사람의 최종 목표는 '행복'이라는 것도 똑같습니다.

이러하듯 사람의 성격은 다 다를 수 있으나 공통 본질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져야만 하고 그 관심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먼저 사랑하는 일입니다.

니체는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했습니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한 후에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면 '우리는 누군가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타인도 사랑받아야 하는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거 같습니다.

촛불

우리 삶은 불타고 있는 '촛불'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서 시간은 불에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를 살지 않고 너무 영혼이니 조상님이니 죽은 후에 삶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은 죽고 난 다음에 실컷 할 수 있는 일인데 굳이 현세를 살면서 그런 걱정들은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인 거 같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죽은 이후의 삶'이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트 눌러주시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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